‘한밤의 음악편지’ 전설의 여성 라디오 DJ 임국희 아나운서 별세 소식입니다.
‘여성살롱 임국희예요’, ‘11시의 희망음악’ 등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MBC는 고인을 ‘심야 여성 DJ의 시초’로 평가했습니다.
부드러운 진행과 따뜻한 목소리로 여성 청취자들의 지지를 얻으며 라디오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65세이던 2003년 방송 인생을 마무리하고 재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대한민국 방송 초창기 여성 아나운서 1세대이자 심야 여성 디제이 임국희 아나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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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세] 전설의 여성살롱 DJ 임국희 아나운서 프로필 & 라디오 작품활동 |
전설의 라디오 DJ 임국희 아나운서
1938년 1월 17일 생으로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진학했으며, 대학 재학 시절 KBS가 주최한 대학생 방송극 콘테스트에서 경상도 술집아줌마 역을 맡아 뜻밖에 연기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방송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본래 교직 이수를 마친 상태였으나 방송국을 드나들며 방송 일에 깊이 매료됐습니다. 1960년 대학 졸업반 시절 훗날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될 남편 성대경과 결혼했으며, 1961년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함과 동시에 KBS 공채 시험에 합격해 5급을(현 9급) 공무원 아나운서로 입사하며 라디오 방송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1964년 동양방송 개국으로 문화방송(MBC) 창설 요원들이 대거 이탈하자 임택근, 최세훈 아나운서 등과 함께 MBC 아나운서로 이적했으며, 1964년 4월 편성에 신설된 '탱고 살롱'의 진행을 시작으로 MBC에서의 본격적인 방송 활동에 나섰습니다.
같은 해 9월부터는 심야 시간대 프로그램 '한밤의 음악편지'를 진행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심야 리퀘스트 프로그램을 이끌었고, 밤에 시끄러운 음악을 틀면 안 된다는 방송가의 금기에 정면으로 도전한 이 프로그램은 젊은 청취자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당시 방송 내용을 담은 레코드가 불법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1972년 전속제가 지배하던 방송가에서 전격적으로 프리랜서를 선언한 원조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당시 방송계 전반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당시 아나운서는 물론 탤런트, 코미디언, 성우, 가수에 이르기까지 전 방송인을 전속으로 묶어두던 관행을 깨뜨린 주인공이 됐습니다.
여러 언론은 임국희 DJ를 현대 전파 미디어가 낳은 특별한 스타, 즉 대한민국 최초의 '퍼스낼리티'로 규정했습니다. 살짝 비음이 섞인 목소리로 10초에 40자, 1분에 원고지 3장을 넘게 읽어내는 속사포 진행력과 청취자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공감 능력이 어우러져, 전속 아나운서 시절보다 프리랜서로서 오히려 더 높은 대우를 받으며 라디오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1975년부터는 MBC 라디오에서 '11시의 희망음악 임국희예요'를 시작으로 같은 해 10월부터 '여성살롱 임국희예요'의 진행을 맡아 10년 넘게 아침 시간대 여성 청취자들의 대표 디제이로 활약했습니다. 하루 3,500통에 달하는 청취자 편지가 방송국으로 쏟아질 만큼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청취자 사연을 엮은 책 '바구니에 가득찬 행복'은 1978년 베스트셀러 2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특히 '여성살롱 임국희예요'가 방송되던 시기, 서울 신당동에서 고추장 떡볶이를 만들어 팔던 마복림(1921~2011) 할머니의 사연이 라디오를 통해 소개되면서 1970년대 전국으로 고추장 떡볶이가 퍼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집안일에 매달리던 여성들의 사연이 대중 매체에 소개되며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당시 담당 피디(PD)였던 최양묵은 "크라운 햄 소시지를 만드는 회사 관계자가 방송된 편지를 보낸 청취자에게 소시지를 제공하고 싶다고 제안하자, 반응이 폭발적으로 늘어 50통에서 500통, 하루 3,500통까지 청취자 편지가 쏟아졌다"고 회상했습니다.
청취자들의 사연이 너무 많아 가위로 편지봉투를 개봉하는 일만 전담하는 직원을 따로 둘 정도라고 당시 인기를 회고했습니다. 1978년 10월 방송에서는 '컴퓨터 데이트' 코너를 마련해 엽서로 받은 청취자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해 짝을 이어주는 시도를 했으며, 1979년 9월에는 실제로 결혼에 골인한 부부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근로 여성 생활 수기를 모집하거나 '여성의 적'을 찾는 캠페인을 벌이는 등 사회 이슈와 밀접하게 연결된 기획으로 꾸준한 화제를 모았습니다. 1984년부터는 이병주, 안성기, 한수산, 김동길, 이미자, 이시형 등 각계 저명인사들을 직접 방송에 출연시키며 프로그램의 폭을 더욱 넓혔습니다.
1988년 여성살롱을 하차한 뒤에도 평화방송, SBS, 교통방송(TBS) 등에서 다수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2003년 65세를 일기로 방송 활동을 마무리했습니다. 은퇴 당시 "'입덧'이란 단어가 금방 떠오르지 않아 얼버무리고서는 그만둘 때가 됐구나 생각했다"고 회고했습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아나운서클럽 회장을 역임하며 후배 아나운서 양성에도 힘을 쏟았으며, 2026년 6월 3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MBC 라디오 장수 프로그램 '여성시대'의 뿌리를 만든 선구자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목소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임국희 수상 이력
- 1983년 -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최우수상(대상급)
- 1984년 - 한국방송대상 개인부문 사회상
- 1989년 -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공로상
- 2014년 - MBC 골든마우스상
DJ 임국희 라디오 방송활동
- MBC 라디오 《탱고 살롱》 진행 (1964년 4월)
- MBC 라디오 《한밤의 음악편지》 진행 (1964년 9월 ~ 1973년)
- MBC 라디오 《11시의 희망음악 임국희예요》 진행 (1975년 4월 ~)
- MBC 라디오 《여성살롱 임국희예요》 디제이(DJ) (1975년 10월 ~ 1988년)
- MBC 라디오 FM 《임국희의 팝스퍼레이드》 진행 (1975년 ~ 1988년)
- 평화방송, SBS, 교통방송(TBS) 다수 프로그램 진행 (1988년 ~ 2003년)
- MBC 창사 50주년 특집 《MBC와 나》 출연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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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의 라디오 DJ 임국희 아나운서 |
아나운서 임국희 별세
2026년 6월 3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026년 6월 6일 오전 6시 30분에 진행됐습니다. 장지는 용미리 자연장지이며, 유족으로는 1남 1녀가 있습니다.
임국희 아나운서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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