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말 음식물을 먹다가 목에 걸린 채로 쓰러졌고 심폐소생술(CPR)을 받은 후 응급실로 이송된 이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생을 마감했습니다.
국민 영화배우 안성기는 2019년 혈액암을 진단 받고 치료를 받고 이듬해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추적 관찰 중 암이 재발해 활동을 중단하고 치료를 받아오다 결국 별세하셨습니다.
영화 황혼열차에 출연하며 아역 배우로 데뷔한 이후 68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로 활약해왔습니다.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5), ‘칠수와 만수’(1988)’, ‘개그맨’(1988), ‘하얀 전쟁’(1992), ‘투캅스’(1993), ‘태백산맥’(1994), 최초의 천만영화인 ‘실미도’(2003), ‘라디오 스타’(2006) 등 수많은 작품으로 사랑받은 배우인데요.
안성기는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사회적 성공에 감사하며 열약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세계의 어린이들을 도와주고 직접 발로 뛰며, 응원해주며 유니세프의 친선대사로도 활동했습니다 .
국민 영화배우 안성기 필모그래피 & 배우 인생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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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나의 모든 것” 국민배우 혈액암 별세 안성기 프로필 & 필모그래피 수상 |
영화배우 안성기 필모그래피 & 작품활동
안성기 씨는 7세(공식적으로는 1952년생이나 실제로는 1950년생) 때 『황혼열차』(1957)를 통해서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황혼열차』는 김기영(1919~1998) 감독의 영화로 동성고 체육교사였던 서울대 연극반 후배 안성기 아버지 안화영(1925~2019) 씨를 영화 제작 일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김 감독이 『황혼열차』 속 문임(도금봉)의 아들을 연기할 아역배우를 찾는다고 하자 안 씨는 자기 아들을 데리고 나가면서 아역배우 안성기가 탄생하게 됩니다.
『황혼열차』에서 주인공 혜련(김지미)의 오빠 역할을 맡았고 전쟁 고아를 소재로 한 멜로드라마였는데 김지미 미모가 소문을 타면서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소년 안성기 씨의 연기는 영화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바로 다음 해인 1958년에 영화 6편에 출연할 정도로 인기가 급상승했습니다.
안성기 씨는 김 감독의 영화 『십대의 반항』(1959)으로 국내외에서 상을 받으며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8살에는 김기영 감독의 작품에서 소매치기 역을 맡아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일찍이 연기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소년원을 탈출한 불량아 근선을 연기해 1960년 문교부 우수국산영화상(대종상 전신) 소년연기상, 제4회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을 각각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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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역배우 안성기 영화 하녀 |
김 감독의 스릴러 『하녀』(1960)에도 출연했고, 이후 성인 스타들처럼 영화 서너 편에 겹치기 출연을 할 정도로 아역 스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조흔파(1918~1980) 작가의 동명 청춘소설을 영화화한 『얄개전』(1965)에서 주연을 맡아 인기몰이를 했으나, 아역배우의 전성기는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고교생이라는 어정쩡한 위치에 『젊은 느티나무』(1968)를 끝으로 아역배우 생활을 마쳤고 이후 11년 동안 활동하며 출연한 영화는 71편이었습니다.
천재 아역배우에서 노력형 배우로
동성고에서 학업에 몰두해 프랑스어를 전공했지만 성적이 나오지 않아 재수를 해 1970년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에 입학했습니다.
학군장교(ROTC)로 임관해 1976년 중위로 군 복무를 마친 후 나온 뒤 베트남어는 쓸데가 없었고 결국 다시 『병사와 아가씨』(1977)에 출연하며 스크린에 성인 배우로 복귀합니다.
(※ 당시 베트남 학군단 출신은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베트남 전쟁은 졸업하기 전에 끝이 났고 군대 복무를 마치고 방황하던 중에 배장호 감독과 이장호 감독을 만나게 됩나다.
1979년 연말 안성기 씨는 서울 중구 서울신문사 인근 성궁다방에서 대학 동창들을 만나러 갔다가 다방 모퉁이에 앉아 있는 이장호 감독을 만나게 됩니다.
29세에 완성한 장편 데뷔작 『별들의 고향』(1974)으로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스타 감독으로 이장호 감독은 1976년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어 활동이 금지되었다가 규제가 막 풀린 상황이었습니다.
이장호 감독은 당시 조감독이었던 배창호(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 감독과 함께 차기작을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안성기는 이 감독에게 인사한 후 가방 속에 넣어 다니던 시나리오 한 편을 건네며 유명 감독에게 자신이 쓴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확인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할 일이 없었던 터라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감독은 복귀작으로 『바람불어 좋은 날』을 준비 중이었는데 배장호 감독은 안성기 씨가 자리를 뜬 후 안성기 캐스팅을 강하게 건의했습니다.
최일남(1932~2023) 작가의 중편소설 『우리들의 넝쿨』(1979)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시골에서 상경한 세 청년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그리려 한 사실주의 작품이었습니다.
이 감독은 주인공인 중국집 배달원 덕배 역할을 실제 사시인 사람에게 맡기기 위해 오디션 광고를 낸 후 연기를 해본 적 없는 사시 청년을 주연으로 뽑았습니다.
이 감독은 그 청년을 자기 집에서 먹이고 재우며 연기를 지도했지만 연기 실력이 쉽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감독은 영등포동 한 안과에서 사시 교정 수술을 해준 후 청년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덕배 역할을 누구에게 맡길지 고민하던 중 안성기 씨와 마주친 것이었습니다.
배 감독은 어린 시절에는 아역배우 안성기 씨를 동경의 시선으로 볼 정도로 팬이었는데 성인이 된 후 출연한 『야시』(1979)를 보고 그의 개성 있는 외모와 연기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배창호 감독의 건의에 이 감독은 마음이 움직였고 안성기 씨에게 『바람불어 좋은 날』 출연을 제안해 '다방 캐스팅'이 이루어졌습니다.
『바람불어 좋은 날』은 안성기 씨 연기 인생에 큰 변곡점을 이룬 영화로 훗날 평가받았으나, 촬영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영화를 찍으며 연기력 때문에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고생 끝에 바람불어 좋은 날은 작품성과 함께 흥행에도 성공하며 국민배우 필모그래피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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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성기 필모그래피 대표작 영화 투캅스 |
성인 연기자로서 처음 인정받은 작품이 바로 바람불어 좋은 날 이후 안개마을, 고래사냥 등으로 전성기를 시작해서 1990년대 박중훈과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태백산맥, 영원한 제국 등으로 흥행을 이어갔습니다.
2000년대 대한민국 최초 천만영화 실미도, 라디오 스타, 화려한 휴가 등에 이어 2010년대 부러진 화살 신의 한 수 등 사회적 이슈를 다룬 작품에도 다수 참여했습니다.
2020년대에는 혈액암 투병 중에도 한산 용의 출현 탄생, 노량 죽음의 바다, 카시오페아 등에 출연했고 2024년 대한민국예술원 영화분과 회원으로 선출되는등 국민배우로 2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안성기 필모그래피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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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성기 영화 실미도 |
실미도 (2003), 라디오 스타 (2006), 한산: 용의 출현 (2022), 투캅스 (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고래사냥 (1984), 청년 김대건 (영화 탄생) 등
안성기 수상 및 주요 이력
-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2012, 1994, 1991, 1989, 1985, 1984, 1983, 1982
- 대종상 남우주연상: 2007, 1994, 1985, 1983, 1982
-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2006, 1990
-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2012, 1996, 1995, 1994, 1983, 1982
-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 영화부문 대상: 2021
- 시카고 인디영화제 남우주연상: 2021
- 휴스턴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2020
- 황금촬영상 인기남우상: 2015
-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2013
- 보관문화훈장: 2005
-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2001
- 대종상 남자인기상: 1995, 1994, 1993, 1991
-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 1994
- 대종상 사회공헌상: 1994
-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최우수남우주연상: 1992, 1987
- 대종상 신인상: 1980
-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 1959
3대영화제 남우주연상만 15회에 달하지만 오랜 기간 정상에 있었으나 성실하고 절제된 자세로 흔한 스캔들조차 한 번 없었던 노력파로도 유명한데요. 휴대폰이 없던 시절, 자택에 전화기 두 대를 두고 한 대에는 자동응답기를 설치해 어떤 용건이든 받아뒀다가 잊지 않고 답을 한 걸로 유명합니다.
시나리오를 거절하더라도 직접 만나서하면서 “그게 살아가는 일이고 예의”라고 했습니다. 추운 날 촬영했던 영화 ‘투캅스’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모닥불을 피워놔 제시각에 나타난 스태프들이 깜짝 놀랐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1997년 15대 대선 후보였던 김대중·이회창·이인제 후보가 공히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꼽힌 배우입니다. 김대중 정부 때는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직을 제의받았으나 고사했고, 수차례 국회 비례의원직도 제안받았으나 한사코 거절했다고 하죠.
“(영화)현장에서 제가 얼마까지 갈 수 있는가에 인생을 걸고 있다”
혈액암 투병 안성기 별세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은 후 2020년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이후 재발하여 투병 생활을 하며 2022년 한산 용의 출현 이후 신작 작품활동이 없었습니다. 2025년 12월 30일 오후 자택에서 음식물을 섭취하던 중 목에 걸려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어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인근 병원 응급실로 긴급 이송된 후 중환자실에 입원했었는데 끝내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장례는 (재)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사)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진행되며 명예장례위원장 신영균, 배창호 감독, 한국영화배우협회 이갑성 이사장,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직무대행 신언식, 한국영화인협회 양윤호 이사장 등 4인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아 장례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1월 5일 오전 9시 소속사 아티스트 컴퍼니에 의해서 사망 소식을 전했습니다. 후배 배우이자, 소속사 대표인 이정재 정우성의 운구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배우 안성기 프로필
- 영어 Ahn Sungki 한자 安聖基 / 본관 순흥 안씨
- 생년월일 1952년 1월 1일 (안성기 나이 74세)
- 고향 경상북도 대구시 신암동 (현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국적 대한민국
- 신체 키 175cm 혈액형 B형
- 종교 가톨릭 (세례명 사도 요한)
- 학력 서울돈암국민학교 (졸업) 경동중학교 (졸업) 동성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학부 (베트남어과 학사) 경기대학교 대학원 (문학 명예박사)
- 군대 이력 대한민국 육군 중위 전역 (학군 12기)
- 가족 아내(부인) 오소영(1985년 5월 9일 결혼) 자녀 안다빈 (1988년 1월 4일생) 안필립 (1991년 12월 22일생)
-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
- 데뷔년도 1957년 영화 황혼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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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배우 안성기 필모그래피 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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